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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역사

Superman forward Montevideo 2009. 9. 5. 03:16
-2005.01.10 22:50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세상 많이 좋아졌다. 내가 주방에서 허리의 아픔을 무릅쓰고 밥을 하다니... 허. 배 고프면 굶었다. 예전엔.

조선족이 만드는 김치는 4위엔이면 산다. 어머니의 손맛은 느껴지지 않지만 아쉬운대로 먹을 만하다. 거기에다가 반주먹만한 고기를 사고, 양파를 샀다.
시작이다. 그 전에 김치 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말 그대로 김치를 넣고- 김치를 자르는 법이 없었다. 김치가 잘게 잘라져 있으면 있는대로, 길면 긴대로- 기름 좀 넣고, 밥을 넣어서 볶은 것이 전부!

오늘
요리의 역사를 열었다.
배고픈 놈이 가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밥통 외관을 보아하니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깨끗이 물청소를 했다. 전기 누전을 방지하기 위해 누안치(히터) 위에 밥통을 얹었다. 매번 밥이 눌러 붙기는 하지만 물건 하나가 아쉬운 터라 참고 이용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스팀이 너무 세게 나왔나? 균형을 잡아 건조시키던 밥통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면서 밥통 밑통이 박살! 마음 잡고 요리의 길로 들어서려고 했는데.

그래도 여기서 멈추면 사나이가 아니지. 그럼 그럼.

집에 있는 주방기구 다 꺼내서 밥을 해본다. 밥통은 박살이 났을 지언정 안의 통은 쓸 수 있다. 뚜껑은 냄비를 뒤집어 얹는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 다닐 때 MT를 가도 밥을 안했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뉴질랜드 시절 그 놈의 돈을 아끼려고 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밥통이 아닌 냄비에 다가. 끼니마다 하려고 하니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간 낭비가 심했다. 그러던 중 일본 친구들이 자주 이용하던 방법-한꺼번에 밥을 왕창한 다음 한끼 양으로 나눠 랩에 싼다음 냉동실에 얼린다. 이후 밥을 먹을 때는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다-에 길들어져 얼마동안 편하게 지냈다.
그런데 지금 집에는 전자렌지가 없다. 방법이 없다.
언제 다음 끼니가 될런지 모르는 상황. 미련하게 배부를 때까지 먹는 수 밖에 없다.

하루에 두번 쓰는 말이 있다.
1. 으어 쓸러!(배고파 죽겠다!)
2. 청 쓸러!(배불러 죽겠다!)

우선 고기를 자른다. 중국집에 가면 무식하게 생긴 칼이 있지 않은가. 흔히 무를 썰 때 자르는 칼. 그걸로 고기를 자르자니 말을 안듣는다. 과도가 있군. 과도로 고기를 자른다. 주사위 모양으로 자르다가 신경질 난다. 대충 자른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볶는다. 간장도 살짝 넣어본다. 맛은 책임 못진다. 사실 요리할 때 맛보기 싫다. 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 싫다. 결과에 집중하자!

김치를 자른다. 김치도 자르다 보니 신경질 난다. 내 입으로 먹을 음식을 내 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자꾸 생각나서는 안될 화장실 밑 닦는 행위가 생각난다. 코도 팠었다. 군대있을 때 똥을 손으로 건졌던 기억도 난다. 전역하고 복학해서 고등학교 선배네 집에 있을 때도 변기가 막혀 손으로 뚫었다. 왜 이런 사념들이 스치는가. 젠장. 그래도 배고프다. 생긴게 지 맘대로다. 그래도 볶는다.

세상이 좋아져 중국 땅에서도 '김치볶음밥'을 치면 고수들의 지혜가 나온다. 종류도 많군. 치즈도 넣고, 참치도 넣고... 그런데 없다.
있는데로 하자. 탕수육처럼 사과를 넣어볼까! 귀찮다.
설탕과 소금을 섞는다. 얼마를 넣어야 할까? 귀찮아서 수저에 안덜고 그냥 통채로 털털 털어낸다.


신이시여!!!! 꼭 보우하소서!
서서 멍하니 볶다보니 계란이 생각난다. 얏호. 계란을 튀긴다.
그리고 양파도 넣는다. 간장도 조금 넣고. 참기름이 있었으면 듬뿍 넣었을 텐데. 어릴 적 밥 맛 없을 때 참기름에 밥비벼 먹으면 맛있었는데. 도시 친구들은 마아가린에 비볐다는데. 헤헤.

볶는다. 뒤집는다. 눌러 붙는다. 젠장 Made in China 물건.

기름을 좀 넣는다. 느끼하면 어쩌지.

다음에 밥을 넣는다. 김치와 양파에서 나온 물이 그래도 뻑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참고로 냄비에 한 밥은 대성공! 푸히히)

볶는다. 아니다. 막 누른다. 왜냐? 약간 탄 것을 좋아하거든. 드디어 끝났다.

맛있다.

자주 하기는 너무 복잡하지만, 맛있다. 우하하하! 진짜 맛있다.

배 터져 죽겠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또 다시 만든 藝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